“주님이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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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이번주는 2020년이 아닌 2021년의 첫 주일입니다.
새해가 되었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비록 과거에, 작년에 잘못하고 후회할 짓을 많이 했더라도 다시 시작할수 있는 마음과 시간이 허락된 것입니다. 2020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짓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새로운 기회를 부여 받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새송교회 성도님들 모두가 새해 새로운 마음과 믿음의 각오로 오늘 첫주부터 함께 시작하기 원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2021년부터는 매일 말씀 읽기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나눠 드렸던 큐티책을 이용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같은 성경본문을 읽고 묵상하고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새송 공동체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희망찬 새해이고 힘찬 발걸음으로 다시 시작할 새해지만, 여전히 우리의 앞길은 알지 못합니다. 코로나로 인한 미래의 불확실성이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작년에 모든 사람들이 어려웠고,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깊은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염병의 근원지가 되기도 하였고, 이단과 다르지 않다는 동급취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에 따라 교회의 활동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예배에 관한 신학적 견해가 교회마다 달라 혼란스럽기도 했고, 특히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은 더욱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올해 코로나 백신이 나오고, 전염병이 종식된다하더라도 교회가 극복해야 할 것은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교회가 해결해야할 큰 과제로 남아있다라는 것이죠.
우리 새송교회가 2019년 1월 첫 주에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딱 2주년이 되었는데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지난 2년간 소중한 성도님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게 되었고, 허름하고 손볼 곳이 많았던 교회 건물도 하나 둘씩 정비되고 가꾸어 나가면서 아름답게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화려하고 멋진 대형 건물을 지은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다.
한 번에 멋지게 지어진 새성전에 입당하는 것도 큰 감격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로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성전이 가꾸어지고 보수되어져서 날마다 날마다 더 아름다운 예배당이 되는 것이 더 감동적인 것같습니다.
우리가 집을 살 때도 그래요. 처음 결혼할때부터 부모가 재산이 많아서 최고급 아파트에 세련된 인테리어와 최신 가전제품과 명품 가구들을 들여놓고 신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부러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처음 얼마 간은 집을 보며 감격하고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하겠지만, 그것이 당연한듯 익숙하기에 감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하 단칸방에 아무 것도 없는 살림으로 시작했지만, 열심히 땀과 성실의 대가로 돈을 모아서, 점점 해가 바뀔수록 집도 커지고 자기 집이 생기고, 새가구도 하나씩 장만하고, 전자 제품들도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훨씬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누가 다 해주면 귀한줄 잘 몰라요. 자신의 노력으로 조금씩 성장할때 자신의 집을 더 아끼고 만족하는 삶을 살 수도 있을 것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가 계속 조금씩 상황과 형편이 될때마다 교회 건물을 손보고 있는데요. 마침 지난 달부터,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는 동안 건물이 비어있었기에 교회시설을 좀더 정비해 볼까하고 생각하다가 교회 바닥이 너무 지져분해서 바닥재 교체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군데 업체에 문의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한 업체의 분께서 ‘교회는 안 간다’라고 잘라 말씀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왜 교회는 작업 안하시냐고 물었더니, 코로나 때문에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우리교회는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방역도 철저히 했고, 건물은 공실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절대 교회는 작업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는데, 기분이 좀 상했습니다. 아니 기분도 상했지만, 충격이 더 컸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세상이 보는 교회의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아,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이런 존재이구나~! 교회랑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적 관계로도 엮기고 싶지 않다라고 평가받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참 충격적 현실 아닙니까?
오늘날 많은 세상 사람들이 조롱 섞인 목소리로 질문합니다. “니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있느냐?” 이런 질문이 더욱 우리를 괴롭게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정말 어디계시는가, 왜 역사하지 않으시는가 의문이 들때도 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현실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한 시편의 시가 우리의 영혼이 살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여 줍니다.
오늘 시편 42편을 함께 나누기 원하는데, 오늘 시편을 지은 시인이 꼭 이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시인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백성들이 성전의 예배를 그리워하면서 불렀을 탄식시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시인이 위기를 만난 것은 분명합니다.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힘든 것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비아냥입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나라도 잃고 성전도 파괴된 유다 백성들에게 ‘너를 도와줄 하나님은 없다' 라는 이방인들, 세상 사람들의 조롱에 시인 정말 비참한 심정으로 울었습니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그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다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오늘시인은 이것으로 주저앉지 않습니다. 다시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님만이 소망이심을 깨닫고 다시 찬양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메마른 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길이 없어보이는 벼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절망의 바닥에 있더라도 그 또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를 도우시고 구해주실 분은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바라보는 희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2021년 새해를 맞아, 광야에 길을 내시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소망의 한 해가 되길 원하는데요. 오늘 시편 42편을 통해 우리의 상한 심령과 갈급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그 길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
1.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냇물을 갈망하는 사슴처럼 간절히 목마름을 경험해 본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갈급한 심정인지 새번역 성경에 더 잘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새번역)
사슴은 시냇물을 찾지 못하면 죽습니다. 다른것으로는 갈급 함을 채울 수 없습니다. 얼마나 물이 갈급 하기에 시내 바닥에서 헐떡이고 있습니다. 가끔 TV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지역의 가뭄이 들어 동물들이 마실물이 없어 죽어가는 장면들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야생의 사는 동물들이 가뭄에 갈라진 바닥을 힘들게 걷다가 물 웅덩이를 발견하고 얼마남지 않은 흙 구덩이의 고인 물에 혀를 대며 물을 마시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분, 물을 생명과 같습니다. 우리 몸은 물이 70%를 이루고 있습니다. 밥을 안 먹고도 보통 15일 이상도 버티지만 물을 안마시면 일주일 이내에 사망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거나 쓰나미가 몰려와서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국가 재난 본부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식수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홍수 때문에 주위에 물은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깨끗한 식수가 공급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14배인 7억 5천만명 정도가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일 그 오염된 물 때문에 죽는 어린이가 1400명이고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어린들이들 물을 얻기 위해 매일 5시간씩 걸어서 물을 길러옵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교육의 기회 또한 박탈됩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 마트에서나 쉽게 사 마실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 또한 큰 축복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쉽게 물을 구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은 잠깐 갈증나는 불편함이 아니라 생명인 것입니다.우리 인간이든 동물이든 최후의 보루이자 생명유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물' 입니다. 특히 고대 시대의 물은 생명이자 삶이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 이삭이 우물을 파고 물이 솟아나는 샘을 얻게 되자, 다른 족장들이 그 우물의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이삭에게 시비를 걸고 다툼을 합니다. 물 때문에 전쟁도 할 정도로 물은 중요합니다.
그런 배경에서 오늘 시편을 보면, 시인의 상황은 정말 절박합니다. 생명이나 다름없는 그 최후의 보루인 물마저 없는 사슴같은 절박한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시인의 모습이 참 이상적입니다.
저는 오늘 시편 42편을 읽으면,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여인이 생각납니다. 한 낮에 뜨거운 태양 아래에 한 사마리아 지방의 여인이 우물에 물을 기르러 옵니다. 그때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고된 인생을 살고 있는 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만난 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무도 기댈것없는 외로운 한 여인에게 진정한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스스로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줄 수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정말 놀라운 분 아닙니까?
우리의 갈급함 심령은 무엇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토록 솟아나는 생명수이신 예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내가 내 힘으로 채우려고 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셔야 갈급함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수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 가운데 갈한 마음과 목마름으로 나온 우리들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갈증을 원천적으로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 기록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릴 나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곧 천국이 어떤 곳 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는 목마름이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을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아픔을 치유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분이심과 동시에 우리의 영적인 공허함과 갈급을 완전히 해결해주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간절히 하나님과의 교제의 목마른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시인도 바로 그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2절입니다.
오늘 내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한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가 간절히 주님을 찾을때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얼마나 은혜입니까?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과거에 아무리 불행한 인생과 불행한 만남이 있었을 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만 만난다면 우리의 인생은 변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리 좋은 가정에서 좋은 환경으로 자라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멋진 배우자를 만나도,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예배자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2.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오늘 시인은 스스로 반문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는가? 내 영혼아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자신을 향해 스스로 책망합니다. 낙심하고 실망한 자신의 모습을 꾸짖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 답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을 기다려라. 내가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여러분, 절망의 끝자락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보다 더 큰 희망을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두 개의 초점이 아닙니다. 결코 두 가지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코로나라는 기가 막히고 낙심되는 현실에서도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그분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 함을 겪는 이유가 이거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현실과 문제 앞에 갇혀서 날마다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 장애,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신앙태도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와 비난과 조롱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과 각자의 처해진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 우리의 시선이 빼앗겨 있다면, 이 예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하는 소망
의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한 청년의 이야기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981년 여름, 학교 음악선생님이었던 ‘마티’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집과 아주 먼거리에 떨어진 텍사스에서 열리는 기독교 신앙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등록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항공사의 파업으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티는 주저하지 않고 3일이나 걸리는 기차표를 샀습니다.
마티의 모습은 거룩하고 비장해 보였지만 사실은 복잡한 마음에서 도망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한 여자에게 받은 시련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을 하며 예배를 섬기던 마티는 힘든 모습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내면의 문제를 감추는 것은 오랜 습관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도피하듯 신앙수련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훈련프로그램에서도 마티의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7월의 찌는듯한 텍사스의 무더위는 모든 것을 무기력하고 지치게 했습니다. 그런 마티에게 친구가 금식을 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해 왔습니다. 수도사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금식, 하지만 피할 길 없이 마음이 괴로웠던 마틴은 20일 금식을 결정했습니다.
금식기 동안 지친 마티의 몸을 유일하게 기운나게 하는 것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었습니다. 시냇물을 향해 달려온 목마른 사슴처럼 물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티는 더 깊은 영혼의 갈망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던 마음보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금식 19일째 되던 날 마티는 남자 기숙사에 있는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 홀로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망하나니다’
말씀 구절을 읽는 마티의 가슴에 멜로디가 떠올랐습니다. 마티의 손 끝은 낡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 이어 자신의 고백을 노래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 소망 온 맘과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이렇게 지어진 찬양인 ‘목마른 사슴’은 1982년 음반으로 나와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전 세계 수많은 크리스천들의 예배 찬양곡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고백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갈망은 매 순간 찾아오죠. 그때마다 나는 예수님 당신만을 갈망합니다라고 고백했던 그 해 여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우리가 이 간절한 마음을 담은 시편에 영감을 받아 만든 찬양을 좋아합니다. 저도 군대에 있을 때 군대동료들과 즐겨 부르던 찬양입니다. 매일 저녁마다, 20분간의 종교활동시간이 있었는데요. 신청곡을 받으면, 많은 군대 선임들이 ‘목마른 사슴’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찬양을 다 같이 부르면, 모두가 뜨겁게 열창했습니다. 군생활 할 때만큼 고되고 힘들때가 어디 있습니까?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하여, 주님은 도우심과 구하며 군생활을 잘 마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목마른 사슴과 같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기에 영원한 생명수로 채워주십니다. 결국 그분을 우리의 목자로 받아들이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려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기다릴수 있습니다.
오늘 신년 첫 주일의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란 창조주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예배하도록 만드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정말 소중한 것은 주님을 만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목마름과 외로움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야 합니다.
올 한 해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고 세상 무엇보다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시는 예배자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